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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어린 나이에 시집 왔더니
초가삼간에 화전 밭 몇마지기가 전 재산이다 .
정신없이 시집살이 하는 중에도 아이는 가졌다 .
부엌일에 농사일 하랴 길쌈 삼으랴 ,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돼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지 비몽사몽 간에 일을
치른 모양이다 .
아들 둘 낳고 시부모 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잡았을 때 시름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 덜컥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
유복자 막내아들을 낳고 유씨댁이 살아가기는 더 바빠졌다 .
혼자서 아들 셋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느질로
십여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셋이 쑥쑥 자랐다 .
열여섯 큰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 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시원하게 해치우고 ,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다 .
세아들이 효자라 ,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게 했다 .
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씨댁은 몇달 만에 새
사람이 됐다 .
새까맣던 얼굴이 박꽃처럼 훤해지고 나무뿌리 같던 손이
비단결처럼 고와졌다 .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이다 .
베개를 부둥켜 안아봐도 ,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
그러다가 마침내 유씨댁은 바람이 났다 .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사냥꾼과 눈이 맞았다 .
농익은 30 대 후반 유씨댁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의
깊은 맛을 알게 된 것이다 .
삼형제가 잠이 들면 유씨댁은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다 .
어느 날 사경녘에 온몸이 물에 젖은 유씨댁이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왔다 .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이다 .
세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오고
쇠다리뼈를 사다 고아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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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유씨댁은 발의 부기가 빠지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또다시 아들 셋이 잠든 후 집을 빠져 나와 범골로 향했다 .
유씨댁은 깜짝 놀랐다 .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
세 아들의 작품이었다 .
사람들은 그 다리를 효불효교 ( 孝不孝橋 ) 라 불렀다 .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이다 .
이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 ( 東國輿地勝覽 ) 에 기록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리
( 경상북도 사적 제 457 호지정 ) 이다 .
일명 칠성교로 불리기도 한다 .
요즈음 자식들은 우리들에게 무슨 다리를 놓아줄려는지 ?
출처:받은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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