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How can I keep from singing

록원 2013. 10. 19. 20:47

 

 

 

 How Can I Keep From Singing - Enya 
 

 

My life goes on in endless song

나의 인생은 찬양과 함께 끝없이 계속되며
above earth's lamentations,

이 땅의 탄식 너머 아득히 들리는
I hear the real, though far-off hymn

찬미의 소리를 들어요.
that hails a new creation

그것은 새로운 창조의 소리예요. 

Through all the tumult and the strife

모든 투쟁의 소란스러운 소리들 가운데
I hear it's music ringing,

내게 들리는 노래 소리 있으니
It sounds on echo in my soul

내 영혼에 메아리 치는 소리라
how can I keep from singing?

나 어찌 찬양 안 할까 

While though the tempest loudly roars,

사나운 비바람 치는 큰소리 들려도
I hear the truth it liveth.

나의 찬양을 멈추지 못해요.
And though the darkness "round me close,

비록 둘러 싼 암흑 속에 내가 갇혔다 해도
Songs in the night it giveth.

나는 그 어두운 밤에도 찬양해요.

No storm can shake my in-most calm

어떤 폭풍도 내가 그 바위에
While to that I'm clinging.

단단히 서있는 동안 나의 고요함을 흔들 수 없어요
Since Love is Lord of heaven and earth,

하늘과 지구의 주인이신 주님은 사랑이신데,
How can I keep from singing?

나 어찌 찬양 안 할까.


When tyrants trembles in their fear

언제나 폭군의 두려움에 떨며
and hear their death knell ringing,

죽음의 종소리가 들리는 중에도
When friends rejoice both far and near

가까이 멀리서 기뻐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How can I keep from singing?

나 어찌 찬양 안 할까.  

 

 

 

엔야(Enya: Eithne Ni Bhraonain)는 아일랜드 북서쪽 끝에 있는 귀도(Gweedore)에서 자라났다. 귀도는 매우 아름답고 조용한 해변도시이며 아일랜드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곳으로 이러한 환경은 그녀의 단단한 음악적 뿌리가 되고 있다. 
 

즉 아일랜드의 전통음악에 그녀가 대학에서 공부한 클래식이 합하여진 것이 엔야의 음악이다. 그러나 그녀의 음악적 재능은 다분히 선천적인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지방에서 유명한 가수이자 색소폰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독학으로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할 정도의 음악광이었다. 
 

엔야는 이미 10대에 그녀의 언니 한 명과 오빠 2명 그리고 쌍둥이 숙부로 결성된 패밀리 그룹 "클리나드"의 일원으로 키보드를 연주할 만큼 성숙했다.  대학에서 고전음악과 피아노를 공부한 엔야는 82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아일랜드 토박인이지만 서양과 동양의 이미지를 함께 지니고 있는 Enya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성가대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키울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점을 두고 평론가들은 종교적 성향이 강한 여가수로 지목하는지도 모른다. 
 

Enya의 음악은 아일랜드의 정서와 성가적인 접근방식, 자신의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처럼 자유롭고 신비롭게 구사하는 스캣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의 대표곡 Orinoco Flow 가 이러한 내용을 대변해 주는 곡이다. 
 

근래 세계인들의 사랑을 조용히 끌어 모으고 있는 엔야의 음악은 차분하고 신선하며 때로는 그레고리 성가처럼 엄숙한 느낌마저도 갖게 한다.  

 

  

 

 

 

 

 

 

오늘 위에서 들려 드린 엔야의 노래 [어찌 찬양 안 할까](How  Can  I  Keep  From  Singing)는  찬송가 403장을 떠 올리게 하는 노래입니다.

 

찬송가 403장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1.

나 위(爲)하여 십자가(十字架)의 중(重)한 고통(苦痛) 받으사

대신(代身) 죽은 주(主)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恩惠)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永永) 죽을 죄(罪)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讚揚) 안 할까

2.

예수 안에 있는 우리 한량(限量)없이 즐겁고

주(主) 성령(聖靈)의 위로(慰勞)함이 마음속에 차도다

천국(天國) 음악(音樂) 소리 같은 은혜(恩惠)로운 그 말씀

끊임없이 듣는 우리 어찌 찬양(讚揚) 안 할까

3.

이 세상(世上)의 모진 풍파(風波) 쉬지 않고 불어도

주(主)님 안에 보호(保護)받는 우리 마음 편(便)하다

늘 깨어서 기도(祈禱)하고 저 천국(天國)을 바라며

주(主)님만을 기다리니 어찌 찬양(讚揚) 안 할까

 

 

 

이 찬송의 가사를 지은  로우리( R. Lowry) 목사님은 미국 남북전쟁이 임박하여 술렁이던 1860년에 두렵기만 한 주변상황을 바라보기보다는 변치 않는 주님의 가호와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가사를 썼습니다.
 

역경 속에서 로우리 목사가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시편기자의 말씀 묵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3-5).

 

그렇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도 찬양, 둘도 하나님 찬양입니다. 그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찬송의 가사를 보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삼중적(三重的)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1절에서 밝히듯이 첫 번 째는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입니다.

2절은 말씀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3절은 천국에의 소망(3절)입니다.
 

첫 번 째는 역사적으로 2천여 년 전에 일어난, 이미 체험한 과거적 사건이요,

두 번 째는 바로 여기서 말씀으로 양육 받는 현재적 사건이요,

세 번 째는 역사의 정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미래적 사건입니다.

 

'과거는 기억 속에, 미래는 기대 속에 있다'는 어거스틴의 말처럼 주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구속사역이 이 노래에 용해되어 있습니다.

 

루이스(C.S.Lewis)는 그의 저서 [시편 명상]란 책에 기록하기를 “가장 겸손하고 동시에 가장 균형 있는 사람은 많이 찬송하는 반면괴짜나 부적합한 불평분자들은 가장 적게 찬송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불평분자들은 아예 찬송을 안하지요. 할줄도 모르고...

 

찬송은 반드시 노래를 부르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말이나 행위(악기몸짓 등)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주님을 찬송해야 한다고 했으니 찬송은 의무입니다.

 

시편을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104:1)고 노래하였지 “여호와여 내 영혼을 송축하소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송축하고 경배하고 찬미하고 영광을 돌리도록 초청되었습니다.  이 말은 명령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찬송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던 곳입니다. 그 참혹한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이런 일을 허용하고 계십니까?"

 

그들의 피맺힌 절규는 연합군이 독일을 물리쳐 수용소를 탈환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 연합군이 탈환한 수용소를 점검하러 들어갔습니다. 점검하던 연합군 병사 중 한 명이 한쪽 벽 후미진 곳에 글씨가 쓰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유대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다니???  그 연합군 병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또 하나의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메마른 광야에서도, 넘실거리는 파도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찌 찬양(讚揚) 안 할까.(장재언) 

 


출처 : 선한사람 과 함께
글쓴이 : 록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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