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사(乾杯辭)
우리는 각종 모임에 술이 한 순배 돌기 전 어김없이 모두 잔을 높이 들고 건배사(乾杯辭)를 외칩니다. 술잔이 오고 가며 등장하는 마법의 주문하나! 건배사란 모임의 술자리에서 술잔을 들고, 술잔을 비우기 전에 하는 스피치입니다. 건배사는 여러 사람 간 장벽을 순식간에 허물어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건배사는 짧고 멋진 말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건배사는 사실 자기를 알릴 수 있고 모임에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건배사도 하나의 스피치이므로 철저한 준비가 필수적이죠. 건배사는 시간, 장소, 여건에 적합해야 하므로 모임의 성격, 참석자 등을 고려하여 미리 준비해 두어야 당황하지 않고,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 건배사 문구도 다양합니다. 대개 들어 본 건배사는 이런 것이죠.
남행열차 : 남다른 행동과 열정으로 차세대 리더가 되자
어머나 : 어디든 머문 곳에는 나만의 발자취를(추억을) 남기자
주전자 : 주인답게 살고, 전문성을 갖추고 살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자
마무리 : 마음먹은 대로 무슨 일이든 이루자
고사리 :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해합니다.
껄껄껄 : 좀 더 사랑할껄, 좀 더 즐길껄, 좀 더 베풀껄
아리랑 : 아름다운 이 순간 서로 사랑합시다.
가감승제 : 기쁨은! 더하고!/ 슬픔은! 빼고!/ 사랑은! 곱하고!/ 우정은! 나누자!
그러나 건배사는 특별한 규칙이나 유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임 상황에 어울리는 코멘트로, 스토리를 가지고 재치와 감동까지 갖추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죠. 건배사가 중요해진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건배 제의를 받는 사람에겐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죠. 짧고 간단한 이야기로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니까요. 게다가 나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전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 위험성이 있습니다.
건배사는 ‘세상에서 가장 짧고 열정적인 폭발력을 가진 말하기’입니다. 1분 이내에 임팩트 있게 말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건배사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모임에서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가 될 수 있는 법이죠.
여기 “내! 힘들다”로 건배 제의하는 어느 중소기업의 사장이 있습니다. 신달자 시인(1943년~)이 이 회사에 강연을 하고 그 감상을 들려준 얘기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강연부탁을 하는 목소리에 미안한 기색이 묻어났다. “강의료를 많이 드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부터 먼저 했다. 그래도 직원들에게 새해 보너스로 내 강의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잘나가는 회사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래서 꼭 강의를 해줘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직원들에겐 새해 보너스라는 데 마음이 쏠렸고 가고 싶어졌다.
돈이 없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직원들에게 강의를 듣게 하려는 사장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가보니 직원들이 부부동반으로 앉아 있었다. 하긴 보너스는 아내에게로 가야 하는 게 요즘 세태다. 현금이 아니니 아내들도 엄연히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분위기에 맞게 이야기를 골랐다. ‘어떤 고통에서도 일어선다.’는 주제였다. 바닥엔 좌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보다 더 큰 바닥의 힘이 숨어있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서로의 손을 뜨겁게 잡고 지금 더 사랑하라고도 했다. 열기가 달아올랐고 더러 우는 사람도 있었다. 강의를 끝냈더니 회사 측이 국수를 먹고 가라고 했다. 성찬이 아니라 국수라는 말에 끌려 저녁도 함께 먹었다. 아내들은 전을 굽고 돼지고기를 삶았다. 눈물겨운 성찬이었다.
숟가락을 들기 전 회사 대표가 건배를 제의했다. 직원들과 함께 나도 소주잔을 들었다. 사장님이 “내, 힘들다!”라고 소리쳤다. 그 말을 직원과 그들의 아내 70여명이 합창하듯 받았다. “다들 힘내!” 그 때 알았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가 된다는 것을. 울컥했다. 이번에 모두 함께 “다들 힘내!”를 외쳤다.
이만하면 될 것 같다. 저 힘으로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저 눈물의 힘을 합치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그들이 6개월 치 월급을 미루었던 인내 끝에 회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모든 직원이 사장의 마음으로,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후문을 들었다. 이것이 한국인의 의지며 한국인의 힘이었다. 그날 내가 받은 강의료는 ‘감동’이었다. 그 강의료는 내 마음속에서 해가 갈수록 이자가 크게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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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덕화만발까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