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無의 사람은 親舊로 삼지말라
여기서 오무(五無)는 ‘무정(無情),무례(無禮),
무식(無識) 무도(無道),무능(無能),을 말 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설명(說明) 하면
첫째, 인간미(人間味)가 있어야 되고,
눈물도 있어야 되고, 사랑도 있어야 된다.
그래서 무정(無情)한 사람이거든
친구(親舊)로 삼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人間)의 人間다움의 첫째 조건(條件)이 인정(人情)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원만(圓滿)한 성품(性稟)을 뜻하는 말인데,
프랑스 시인 ‘아벨 보나르’도
‘우정론(友情論)’에서 이상적(理想的)인
우정(友情)의 제1덕목(第1德目)을
“좋은 성품(性稟)”이라고 말한 바 있다.
둘째, 人間은 유일(唯一)하게 예의(禮儀)를 아는 동물(動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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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는 예(禮)가 아니거든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고 했다.
예의(禮儀)가 없으면 人間이 아니라는 뜻이고
따라서 무례(無禮)한 사람은 상종(相從)하지 말라는 뜻이다.
맹자(孟子)가 사양지심(辭讓之心)을
'예(禮)'의 근본(根本)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예의(禮儀)는 사양(辭讓)하는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 사양심(辭讓心)은 양보(讓步)해주는 마음이고,
속아주고 져주고 관용(寬容)해주는 마음이다.
그런 사람이면 공자(孔子)가 말한바
익자삼우(益者三友)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학문연구(學文硏究)는 인간(人間)만의 특권(特權)이다.
학문 수준(學文 水準)이 있는 사람은
사고방삭(思考方式)이 합리적(合理的)이고
이해심(理解心)이 깊고, 대개는 인격수준(人格水準)도 높기 때문에 친구(親舊)감으로 적격(適格)이다.
그러나 그 수준(水準)이 차이(差異)가 많이 나면 안 되고,
그래서 자기보다 많이 무식(無識)해도 안 되지만
너무 유식(有識)해도 부담(負擔)이 된다.
보통(普通) ‘무식(無識)한 사람을 친구(親舊)로 삼지 말라’는 말은 지적 수준(知的 水準)이 류사(類似)해야
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넷째, 사람은 동물중(動物中)에서
유일(唯一)하게 길을 따라 살아가는 동물(動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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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중에는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고, 되는 길 이 있다.
예컨대 공직자(公職者)가 가야할 길(使命)이 있고,
교육자(敎育者)가 가야할 길이 따로 있다.
아버지의 길이 있고
어머니의 길이 있다.
그 길에 충실(忠實)한 사람을 일러서 도리(道理)를 아는
사람이라 하고 사명(使命)에 충실(忠實)한 사람이라 한다.
그 길을 무시(無視)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무도(無道)한 사람이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친구(親舊)이면 욕(辱)이 된다.
다섯째, 인간(人間)은 창조적(創造的) 동물(動物)이면서
상부상조(相扶相助)할 줄 아는 동물(動物)이다.
人生 길을 걸어가다 보면 곤난(困難)에 처(處)할 때도 있고
위기(危機)를 만날 때도 있고
궁지(窮地)에 몰릴 때도 있다.
그럴 때 친구(親舊)를 도와 주려면 인정(人情)만으로는 안 된다. 능력(能力)이 있어야 되고 적극성(積極性)이 있어야 된다.
그래서 무능(無能)한 사람은
친구(親舊)가 되기에 적합(適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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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잘 섞으면 향기(香氣)가 나고
친구(親舊)를 잘 만나면 힘이 난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오무(五無)의 사람이
되는 건 아닌가 반성(反省)해야겠다.
모셔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