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명성교회 김삼환(71) 목사

록원 2016. 1. 17. 06:51


목사님은 진정한 목회자 이십니다 감동 했습니다

요즘 같은세상에 이런 목사님이 계시다니 !!!
 

> ♡지금도 밥 굶고 있을 가난한 사람 에게 가야할 돈"

>

목사님은 진정한 목회자 이십니다 감동 했습니다

요즘 같은세상에 이런 목사님이 계시다니 !!!
 

> ♡지금도 밥 굶고 있을 가난한 사람 에게 가야할 돈"

> 명성교회 김삼환(71) 목사가 지난달 27일 정년 퇴임하고 
>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 1980년 7월 버스 종점 부근의 상가 건물 2층 34평에서 
> 교인 20명으로 첫 예배를 올린 후 35년 5개월 만이다. 
   교회 개척 후 시작된 새벽기도는 명성교회의 트레이드마크였고, 
> 35년 사이 교인은 10만여명으로 늘어 서울 강동 지역의 대표적 
   교회로 성장했다.
> 명성교회 당회는 김 목사에게 퇴직금 3억6000만원과
> 은퇴 후 사역을 위한 공로금 등으로 모두 29억6000만원을 책정했다.
> 그러나 김 목사는 이 돈을 모두 교회와 사회를 위해 써달라며 
   사양했다. 
> 은퇴 이틀 후인 지난달 29일 한국교회평화통 2015년 
   송년기도회' 모임 후 김 목사를 만나 소회를 들었다. 
> 명성교회는 현재 후임 담임목사를 물색 중이다. 
> 그동안 후임 문제에 대해 "아들(김하나 새노래명성교회 목사)은 
> 후보에서 빼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온 김 목사는 이날 "
> (아들을 후임으로 하면) 교회가 상처가 너무 많아진다"고 말했다.

> ♡ 마지막 설교에서 ♡
> "주의 종은 주님의 일을 하고 사라질 뿐"이라고 말했다.
> "돌아보면 다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한 것이다.

> 이제 비행기에서 내린다. 
> 결국 남의 비행기에 탔으면 깨끗하게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 ♡퇴직금과 공로금을 사양했다.  일반 기준으로 두 번 놀란다. 
> 먼저 액수가 엄청나서이고,  또 전액을 내놓아서다.
> "저도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장로님들이 결정한 것이다.
> 어쨌든 내 것이 아니라 생각했고,  용처는 세 곳을 말씀드렸다. 
> *우리 교회 출신 목회자들이 
> 한 200명 되는데 정말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있다.
> 그분들과의 공동 작품인데 나하고 같이 일하다 나가서 
> "밥 굶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10억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 *우리 교회 양떼(교인) 역시  "밥 굶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 10억원은 어려운 교인을 위해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 *또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가난한 분들을 위해
> 나머지를 썼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 가난은 본인 노력으로 금방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 밥 굶는 일'을 자주 언급하는데, 

> ♡전도사 시절 가난 때문에 자식을 잃은 일이 있다고 들었다.

> ♡"1969년 안동에서 전도사 하던 시절인데 첫딸이 태어나자마자
   계속 아팠다. 
> 교회에선 한 달에 쌀 두 말, 돈 2000원 받던 시절이다. 
> 병원 데려갈 엄두도 못 내다가 마지막에 병원에 데려갔더니 
> 뇌막염이라 했다.  사흘 만에 하나님께 떠났는데 
> 입원비 7600원이 없었다. '! 
>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길이 없다' 고 하니 병원에서 입원비를 받지 않고

 

앰뷸런스까지 내줘서 산에 묻었다.  그땐 울 기운도 없었다."

> ♡그렇게 혹독한 가난을 겪으면 돈에 한이 맺히지 않나.
> "안동의 경안성서신학원 재학 시절에 겪은 '송편 교훈'이 있다.
> 여름방학 마치면 어머님이 송편을 싸 주셨다. 
> 우리 형편엔 너무도 귀한 것이라 사물함에 넣어두고 혼자만 
   먹으려 했다. 
> 당시 6명이 기숙사 한방을 썼다. 
> 친구들이 잘 때 먹어야 하는데,  꼭 그럴 때는 안 자더라.
> 혼자 먹으려다 먹지도 못하고 나중엔 썩어서 다 버렸다. 
> 혼자 먹는 것은 기쁨도 없고, 힘만 든다. 
> *하나님은 가난을 통해 나 자신을 다듬어주셨고, 
>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사명을 주셨다."

> ♡명성교회는 1000여 곳의 농어촌·미자립 교회를 지원하고 있으며, 
   1980년대부터 지방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인 장학관을 서울과 목포, 
   광주, 전주, 순천, 대구, 부산에 지어 지금까지 3800명이 이곳을 
   거쳐 갔다. 
> 2012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서울 연남동 거처를 마련했고,
> 2010년 아시아 최초의 민영 교도소인 소망교도소 설립도 주도했다. 
> 또 국내의 안동성소병원과 영양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해 
> 2002년에는 에티오피아에 최신 시설을 갖춘 명성기독병원
> (MCM)을 설립해 '에티오피아의 세브란스 병원'으로 키우고 있다.

> ♡아들(김하나 목사)을 후임 담임목사 후보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 "명성교회와 한국 교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이 왔으면 해서다.. 
> (아들 문제로) 제가 피해 입는 것은 괜찮지만 "교회가 상처를 입으면
   안 된다. 
> 그리고 아들이 목회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라도 할 수 
   있다. 
> 물론 후임은 청빙위원회가 결정할 일이고 은퇴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월권(越權)일 수 있다. 
> 하지만 저는 이 문제에 여운을 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은퇴 후에는 어떤 활동을 구상하고 있나.
> "봉사하고 싶다.  탈북자와 통일 문제, 다문화 가정, 중독자,
> 소망교도소 등 할 일이 많다."♡



가 지난달 27일 정년 퇴임하고 
>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 1980년 7월 버스 종점 부근의 상가 건물 2층 34평에서 
> 교인 20명으로 첫 예배를 올린 후 35년 5개월 만이다. 
   교회 개척 후 시작된 새벽기도는 명성교회의 트레이드마크였고, 
> 35년 사이 교인은 10만여명으로 늘어 서울 강동 지역의 대표적 
   교회로 성장했다.
> 명성교회 당회는 김 목사에게 퇴직금 3억6000만원과
> 은퇴 후 사역을 위한 공로금 등으로 모두 29억6000만원을 책정했다.
> 그러나 김 목사는 이 돈을 모두 교회와 사회를 위해 써달라며 
   사양했다. 
> 은퇴 이틀 후인 지난달 29일 한국교회평화통 2015년 
   송년기도회' 모임 후 김 목사를 만나 소회를 들었다. 
> 명성교회는 현재 후임 담임목사를 물색 중이다. 
> 그동안 후임 문제에 대해 "아들(김하나 새노래명성교회 목사)은 
> 후보에서 빼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온 김 목사는 이날 "
> (아들을 후임으로 하면) 교회가 상처가 너무 많아진다"고 말했다.

> ♡ 마지막 설교에서 ♡
> "주의 종은 주님의 일을 하고 사라질 뿐"이라고 말했다.
> "돌아보면 다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한 것이다.

> 이제 비행기에서 내린다. 
> 결국 남의 비행기에 탔으면 깨끗하게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 ♡퇴직금과 공로금을 사양했다.  일반 기준으로 두 번 놀란다. 
> 먼저 액수가 엄청나서이고,  또 전액을 내놓아서다.
> "저도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장로님들이 결정한 것이다.
> 어쨌든 내 것이 아니라 생각했고,  용처는 세 곳을 말씀드렸다. 
> *우리 교회 출신 목회자들이 
> 한 200명 되는데 정말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있다.
> 그분들과의 공동 작품인데 나하고 같이 일하다 나가서 
> "밥 굶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10억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 *우리 교회 양떼(교인) 역시  "밥 굶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 10억원은 어려운 교인을 위해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 *또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가난한 분들을 위해
> 나머지를 썼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 가난은 본인 노력으로 금방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 밥 굶는 일'을 자주 언급하는데, 

> ♡전도사 시절 가난 때문에 자식을 잃은 일이 있다고 들었다.

> ♡"1969년 안동에서 전도사 하던 시절인데 첫딸이 태어나자마자
   계속 아팠다. 
> 교회에선 한 달에 쌀 두 말, 돈 2000원 받던 시절이다. 
> 병원 데려갈 엄두도 못 내다가 마지막에 병원에 데려갔더니 
> 뇌막염이라 했다.  사흘 만에 하나님께 떠났는데 
> 입원비 7600원이 없었다. '! 
>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길이 없다' 고 하니 병원에서 입원비를 받지 않고

 

앰뷸런스까지 내줘서 산에 묻었다.  그땐 울 기운도 없었다."

> ♡그렇게 혹독한 가난을 겪으면 돈에 한이 맺히지 않나.
> "안동의 경안성서신학원 재학 시절에 겪은 '송편 교훈'이 있다.
> 여름방학 마치면 어머님이 송편을 싸 주셨다. 
> 우리 형편엔 너무도 귀한 것이라 사물함에 넣어두고 혼자만 
   먹으려 했다. 
> 당시 6명이 기숙사 한방을 썼다. 
> 친구들이 잘 때 먹어야 하는데,  꼭 그럴 때는 안 자더라.
> 혼자 먹으려다 먹지도 못하고 나중엔 썩어서 다 버렸다. 
> 혼자 먹는 것은 기쁨도 없고, 힘만 든다. 
> *하나님은 가난을 통해 나 자신을 다듬어주셨고, 
>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사명을 주셨다."

> ♡명성교회는 1000여 곳의 농어촌·미자립 교회를 지원하고 있으며, 
   1980년대부터 지방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인 장학관을 서울과 목포, 
   광주, 전주, 순천, 대구, 부산에 지어 지금까지 3800명이 이곳을 
   거쳐 갔다. 
> 2012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서울 연남동 거처를 마련했고,
> 2010년 아시아 최초의 민영 교도소인 소망교도소 설립도 주도했다. 
> 또 국내의 안동성소병원과 영양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해 
> 2002년에는 에티오피아에 최신 시설을 갖춘 명성기독병원
> (MCM)을 설립해 '에티오피아의 세브란스 병원'으로 키우고 있다.

> ♡아들(김하나 목사)을 후임 담임목사 후보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 "명성교회와 한국 교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이 왔으면 해서다.. 
> (아들 문제로) 제가 피해 입는 것은 괜찮지만 "교회가 상처를 입으면
   안 된다. 
> 그리고 아들이 목회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라도 할 수 
   있다. 
> 물론 후임은 청빙위원회가 결정할 일이고 은퇴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월권(越權)일 수 있다. 
> 하지만 저는 이 문제에 여운을 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은퇴 후에는 어떤 활동을 구상하고 있나.
> "봉사하고 싶다.  탈북자와 통일 문제, 다문화 가정, 중독자,
> 소망교도소 등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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