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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대 지금 幸福한가?"

록원 2015. 9. 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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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권이복 남원도통동성당주임신부(조선A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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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그대 지금 幸福한가?"

  • 권이복 남원 도통동성당 주임신부

입력 : 2015.09.09 03:00

'東西 잇는 다리 되자' 다짐 속신, 학교 떠나 出家했던 옛 친구
印度로 가서 答 찾고 사는 그와 38년 만에 만나면 물어보리라
장엄하고 피할 수 없는 질문을… 그러곤 '사랑한다' 답하리라

권이복 남원 도통동성당 주임신부 사진
권이복 남원 도통동성당 주임신부
나는 지금 한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친구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소련·몽골 그리고 바이칼호를 지나 이곳 한국으로 오고 있다. 우리는 45년 전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헤어졌는데 뜻밖에도 아주 특별한 장소, 즉 신부(神父)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갔는데 그 친구는 그제야 학부 2학년 과정을 이수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선생님이 되는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어떻든 너무도 뜻밖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는 그때 이미 몸은 신학교에 있었지만 마음은 깊은 산속 절간에 있었다. 말리고 또 말렸으나 끝내 출가(出家)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찌하겠는가! 우리는 또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날 밤, 내가 한 마지막 이별의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 어쩔 수 없구나. 부디 성공해라. 나는 이곳(가톨릭)에서 열심히 살 테니 너는 그곳(불교)에서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먼 훗날 너와 내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다리가 되어 보자." 얼마 전 이메일로 그 친구에게 그런 추억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암, 기억하고 말고. 어찌 잊겠는가?" 하고 답해왔다.

그렇게 헤어진 지 38년이 흘렀다. 나는 천주교 사제가 되어 36년을 살았고, 그 친구는 그 세월을 불가(佛家)에서 보냈다. 편지에 따르면 그는 출가 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인도에서 그 답을 찾았고, 달라이 라마가 머무는 다람살라에서 27년을 살고 있다고 한다. 40년 가까운 풍상(風霜)을 서로 다른 세상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며 우린 무엇을 얻었을까? 그 친구는 무엇을 위해 그 긴 세월 그 먼 나라에서 그토록 몸부림쳤을까?

기사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20대에 헤어져 예순을 넘겨 만나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할까? 일반적인 삶, 그저 보통으로 살아온 친구라면 그 물음이야 뻔하리라!

"야 친구, 참 오래간만이네. 어허, 어언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 자식은 몇인가? 마누라는 아직 살아 있고? 건강은 괜찮고? 참! 자식들은 다 여의었는가? 며느리는? 사위는? 벌어놓은 재산은 좀 있나? 노후살이 대책은 돼 있고?" 대충 이런 말이 오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나 나나 장가 한번 가보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그런 말을 할 일은 없을 것이다.

40년을 사제로, 스님으로 살아온 우리 사이에는 무슨 말이 오갈까? 그의 경력을 보니 참으로 대단하다. 최근엔 큰 상을 받기도 했다. 여기저기 매스컴에도 많이 소개되는 거물급 스님임을 요즘에야 알았다. 하지만! 그따위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저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 "야, 너 지금 행복하냐?" 바로 이것 하나다. 그간 그가 히말라야에 살든 뉴욕에 살든, 무슨 상을 받았든, 여우 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이 있든 없든 그딴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한 번밖에 없는 삶을 이미 웬만큼 살아버린 마당에 그런 걸 묻고 따져서 무얼 어쩌겠단 말인가? 그냥 "야! 너 지금 행복하나?"라고만 묻고 싶다.

그런데 이 물음은 곧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준엄하고 무서운 물음이다. 온몸과 온 마음, 온 생애를 걸고 답해야 하는 절규이자 고백이다. 겉으로는 "야! 너 행복하냐?"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야 너 권이복! 너 지금 정말 행복하냐?"라는 질문이다. 아니, 이 질문은 사제인 나, 스님인 그에게만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든 인간에게 던지는 장엄하고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받고 있는 그 인간은 지금 바로 여기서 즉각적으로, 추호도 거짓 없이 답해야 한다.

자! 나는 이제 답해야 한다.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예!" "아니요!"라고 확실히 답해야 한다. 그래야 걸어온 길이 보이고,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이제 답한다. "예!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이 답은 그 답 자체로 나를 행복하게 한다. 밝고 아름다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온몸, 온 맘, 눈, 코, 입, 귀, 온 얼굴이 따끈따끈 달아오른다.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이 삶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그래서 얼마나 행복한가….

이제 곧 친구가 온다. 40년 전 새끼 한 타래 둘러메고 산속으로 들어갔던 그 동자(童子)가 이젠 새끼줄 던져버리고 다 해진 걸망 하나 둘러메고 세상으로 다시 내려온다. 팽팽했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하고 꼿꼿했던 허리는 활만큼 휘어 지팡이 짚고 내려온다. 그러고 그는 이렇게 말하리라. "이복아, 너 행복하냐? 나도 참 행복하단다"라고. 나도 답하리라 "그래! 너와 나, 40년의 인생살이! 참 좋다! 참 좋아! 그렇지?"

그리고 세상을 향해 같이 소리치고 싶다. "그대 지금 행복한가?"라고. 나는 서쪽, 그는 동쪽으로부터 이어온 그 다리 위에서….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출처 : 연꽃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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