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9.09 03:00
'東西 잇는 다리 되자' 다짐 속신, 학교 떠나 出家했던 옛 친구
印度로 가서 答 찾고 사는 그와 38년 만에 만나면 물어보리라
장엄하고 피할 수 없는 질문을… 그러곤 '사랑한다' 답하리라

"그래, 어쩔 수 없구나. 부디 성공해라. 나는 이곳(가톨릭)에서 열심히 살 테니 너는 그곳(불교)에서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먼 훗날 너와 내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다리가 되어 보자." 얼마 전 이메일로 그 친구에게 그런 추억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암, 기억하고 말고. 어찌 잊겠는가?" 하고 답해왔다.
그렇게 헤어진 지 38년이 흘렀다. 나는 천주교 사제가 되어 36년을 살았고, 그 친구는 그 세월을 불가(佛家)에서 보냈다. 편지에 따르면 그는 출가 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인도에서 그 답을 찾았고, 달라이 라마가 머무는 다람살라에서 27년을 살고 있다고 한다. 40년 가까운 풍상(風霜)을 서로 다른 세상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며 우린 무엇을 얻었을까? 그 친구는 무엇을 위해 그 긴 세월 그 먼 나라에서 그토록 몸부림쳤을까?

20대에 헤어져 예순을 넘겨 만나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할까? 일반적인 삶, 그저 보통으로 살아온 친구라면 그 물음이야 뻔하리라!
"야 친구, 참 오래간만이네. 어허, 어언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 자식은 몇인가? 마누라는 아직 살아 있고? 건강은 괜찮고? 참! 자식들은 다 여의었는가? 며느리는? 사위는? 벌어놓은 재산은 좀 있나? 노후살이 대책은 돼 있고?" 대충 이런 말이 오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나 나나 장가 한번 가보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그런 말을 할 일은 없을 것이다.
40년을 사제로, 스님으로 살아온 우리 사이에는 무슨 말이 오갈까? 그의 경력을 보니 참으로 대단하다. 최근엔 큰 상을 받기도 했다. 여기저기 매스컴에도 많이 소개되는 거물급 스님임을 요즘에야 알았다. 하지만! 그따위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저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 "야, 너 지금 행복하냐?" 바로 이것 하나다. 그간 그가 히말라야에 살든 뉴욕에 살든, 무슨 상을 받았든, 여우 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이 있든 없든 그딴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한 번밖에 없는 삶을 이미 웬만큼 살아버린 마당에 그런 걸 묻고 따져서 무얼 어쩌겠단 말인가? 그냥 "야! 너 지금 행복하나?"라고만 묻고 싶다.
그런데 이 물음은 곧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준엄하고 무서운 물음이다. 온몸과 온 마음, 온 생애를 걸고 답해야 하는 절규이자 고백이다. 겉으로는 "야! 너 행복하냐?"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야 너 권이복! 너 지금 정말 행복하냐?"라는 질문이다. 아니, 이 질문은 사제인 나, 스님인 그에게만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든 인간에게 던지는 장엄하고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받고 있는 그 인간은 지금 바로 여기서 즉각적으로, 추호도 거짓 없이 답해야 한다.
자! 나는 이제 답해야 한다.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예!" "아니요!"라고 확실히 답해야 한다. 그래야 걸어온 길이 보이고,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이제 답한다. "예!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이 답은 그 답 자체로 나를 행복하게 한다. 밝고 아름다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온몸, 온 맘, 눈, 코, 입, 귀, 온 얼굴이 따끈따끈 달아오른다.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이 삶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그래서 얼마나 행복한가….
이제 곧 친구가 온다. 40년 전 새끼 한 타래 둘러메고 산속으로 들어갔던 그 동자(童子)가 이젠 새끼줄 던져버리고 다 해진 걸망 하나 둘러메고 세상으로 다시 내려온다. 팽팽했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하고 꼿꼿했던 허리는 활만큼 휘어 지팡이 짚고 내려온다. 그러고 그는 이렇게 말하리라. "이복아, 너 행복하냐? 나도 참 행복하단다"라고. 나도 답하리라 "그래! 너와 나, 40년의 인생살이! 참 좋다! 참 좋아! 그렇지?"
그리고 세상을 향해 같이 소리치고 싶다. "그대 지금 행복한가?"라고. 나는 서쪽, 그는 동쪽으로부터 이어온 그 다리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