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 밀레의 晩鐘 ◆

록원 2014. 11. 19. 06:58
◆ 밀레의 晩鐘 ◆
 

 

 

 

♥ 밀레의 만종에 숨은 슬픈 이야기♥ 
1857년 저녁노을이 지는 들녘역에 감자를 캐던 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 억양 빛에
멀리 보이는 교회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晩鍾)'은 프랑스의 자랑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 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메길수없는 보물이 되었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에 불과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한다.
이 1000 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이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 값어치를 얻었고
그로부터 또 1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된 것이다.
1000프랑을 지원한 것이 국부(國富)를 일구어낸 것이다.
 
루브르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다.
프랑스 측은 국회와 행정부 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스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 채 주저앉을 무렵 백화점 재벌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 (80만푸랑)를 지불하고
'만종'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 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이삭줍는 사람'과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다.
 
이삭을 줍는 사람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와 밭일 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감자를 먹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다.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 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시체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밀레의 '만종'을 보면
누구라도 신성한 노동 후의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 꼬마 달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맛보았다.
그 불안감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의 뇌리에 들러 붙었는지 달리는
랫동안 그 까닭을 알아내려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
 
그는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감자바구니를 어린 아이의
관으로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수십 년 후, 이러한 그의 투시력 은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정확한 관찰이었음이 밝혀졌다.
 
루브르 미술관이 자외선 투사작업을 통해 그 감자 바구니가
초벌그림에서는 실제로 어린아이의 관이었 음을 입증한 것이다.
현실 생활에는 서툴렀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삶에대한 투시력을
갖게되었다는 그의고백은 참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화가하면 떠오른사람은 밀레다

그가남긴 희대의 명작 중 만종 이삭줍는 사람,씨뿌리는사람 등

명작이 바르비종  이마을에서 탄생했다한다  

 

 

 

바르비종 마을 앞 명작을 탄생시킨 넓은 밭  

밀레는 저 먼숲 근처에서 마을을 향해 화필을 들었을것이다

 

먼종(晩鐘)이 품고 있는

슬픈이야기 읽고 보 면 더 한 느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