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4살 공순이의 소원

록원 2014. 11. 5. 20:05

 

14살 공순이의 소원

 

가난이 흉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게는 아픔과 상처를 많이 주고 떠났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부모님께 중학교 보내달라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한채

14살 어린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책가방 대신에 도시락 가방을 들고

청계천 봉제 공장에 취직을 하였다.

 

아침부터 저넉 늦게까지 재봉틀을 돌리는

고달픔 보다는 더 고통스러은 것이 있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면 같은 내 나이또래 아이들은

다 교복을 입었는데

나만 사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 서러운 것은 

같은 또래의 남학생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또는 입을 삐쭉거리면서

"공순이"라고 놀리는 것이다.

 

어느 아이들은 비웃는 얼굴로 또는 측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평화시장,

그 시절에는 자동차의 매연과

시멘트 기둥 벽만 가득한 청계천 하늘을 올려다보며

"죽고싶다"고 해본 날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에 나가서 중고등부 예배에 참석했는데

학생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애는

달랑 나 하나뿐이었다.

 

감색 치마에 감색 저고리에

흰색 넓은 깃을 단 중학교 교복이

임금님 왕복과 왕관보다 더 입고 싶었다.

 

교회에서는 나를 깜싸주려고 애를 쓰는 아이들고 있었고

 선생님들도

내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몇달은 다니다 나는 더이상 창피해서

교회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못 배운 그림자는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언제나 내 마음에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에 더 열을 올렸고

자식들은 의사도 되었고

수의사도 되었다. 

 

그렇게 세월을 다 보내고

공부의 꿈도, 교복의 꿈도 희미해질 50대 후반에 

하나님은 내게도 기회를 주셔서

그립고도 부러웠던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성년 중학교를 거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10대 공순이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중학교 교복 입은 학생들이 그렇게도 부러웠던 내가

이제는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가 되었다. 

 

얼마 전 어느 아마추어 시인의

"남동 공단에 일하러 가는 근로자"

라는 시에 눈길이 엄추어 섰다.

 

"공순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공단에 다니던 아픔을 다 잊은 줄 알았더니

아직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았었나보다.

 

-한기옥의 산문집 "그래도, 그래도" 중에서-

 

"환난은 인내를,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줄 앎이로라"(로마서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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