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워싱턴의 벚꽃 그 뿌리가 보이는가?

록원 2019. 4. 9. 20:24


 

 

 

 

  

  

 

 

 

    미국의 워싱턴 (Washington DC) 당국은 해마다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벚꽃 축제'를 열어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워싱턴 관광

    수입의 3분의 1가량을 이 기간에 벌어들인다고 한다.

     

    포토맥(Potomac River)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인공 호수(Tidal Basin)를 따라

    수천 그루의 벚꽃이 완전히 개화하면 그 화려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벚꽃이 피면 일본 대사관과 기업들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일 관계

    끈끈함을 과시하려는 세미나가 줄을 잇고 축제를 후원하는 일본

    기업들의 간판이 워싱턴 시내 곳곳에 들어선다. 벚꽃만큼 화려한

    일본의 '소프트 외교'가 이때 빛을 발한다.

     

    워싱턴 벚꽃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우리의 아픈 과거를 만난다.

    러일전쟁의 전운(戰雲)이 짙어져 가던 1904년 초 고종은 두 나라 간의

    분쟁에 엄정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선언은 허약한

    제국의 몰락을 예고하는 '자기 고백'에 불과했다. 러시아의 남하

    극도로 경계했던 미국은 일본군의 한반도 진입을 용인했고 결국

    러일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의 운명을 갈랐다.

    고종은 이승만을 미국에 보내 도움을 호소했지만 미국은 일본과 뒷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고 1905년 7월

    그 유명한 '가쓰라-태프트 밀약'(Taft–Katsura agreement)이 맺어졌다.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용인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미국에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몇 해 뒤 일본은 3000그루의 벚나무를 미국으로 옮겨가

    뿌리를 내리게 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 도쿄로 건너가 밀약을 맺었던

     '윌리엄 태프트'(27th U.S. President)였으니 그 의미를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이 벚나무들은

    굳건한 미·일 동맹을 상징하는 거목(巨木)으로 성장했다.

     

    이번 주 워싱턴을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도 이 화려한

    벚꽃 군락을 지나게 될 것이다.

    그저 그 외면의 아름다움에 감탄만 하고 지나칠지, 아니면

    그 이면(裏面)의 역사를 성찰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난 세기 미국은 동아시아 강대국 사이에 낀 한반도의 운명

    여러 차례 개입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우리에게 아픈 과거로 남아 있다.

    일본의 한반도 침탈을 용인했고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는 데

    소련과 합의한 것도 미국이다.

     

    그런가 하면 목숨 바쳐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았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한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운 것도 미국이었다.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이러한 한·미 간 애증(愛憎)의 역사 쯤 알고

    다시는 한반도에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식과 지혜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할텐데...